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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367

육십이 되면 육십이 되면                             김승희 육십이 되면 나는 떠나리라정든 땅 정든 집을 그대로 두고장농과 식기와 냄비들을 그대로 두고육십이 되면 나는 떠나리라 갠지스 강가로딸아, 안녕히,그동안 난 너를 예배처럼 섬겼으니,남편이여,그대도 안녕,그동안 그렸던 희비의 쌍곡선을 모두 잊어주게,축하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그대의 축하를 받으며 난 이승의 가장 먼 뱃길에 오르리생명의 일을 모두 마친 사람들이갠지스 강가에 누워태양의 괴멸작용을 기다린다는 곳,환시 인듯, 허공중에 만다라화가 꽃피며,성스러운 재와 오줌이 혼합된 더러운 갠지스 물을 마시며이승의 정죄와 저승의 빛을 구한다는더러운 순결의 나라로해골의 분말이 물위에 둥둥 뜨면해와 달과 별이 그려진거대한 수레바퀴가 반짝반짝 혼령을 실.. 2016. 2. 17.
금빛날개 금빛날개 전경애 시 아 아 언제던가 처음 그 날이 아 아 꿈이런가 하늘은 열리고 내 님의 작은 새는 아득히 날아와 외로운 내 창문 두드리던 날 아 아 언제던가 처음 그 날이 아 아 꿈이런가 하늘은 열리고 내 님의 작은 새는 아득히 날아와 푸른 잎사귀 전해 주던 날 세상은 고요하고 햇빛 찬란한데 오 나를 위로하는 눈부신 날개여 훨훨 날아라 높이 날아라 날아라 금빛 날개여 봄이 오면 싹이 트고 여름에는 꽃이 피네 오 내 눈물 씻어 주는 눈부신 날개여 훨훨 날아라 높이 날아라 날아라 금빛 날개여 2016. 2. 16.
세월 세월 송문정 흰 강아지 한 마리 휘익 골목을 지나갑니다 그림자도 따라갑니다 가을날 노루꼬리 만한 햇살이 목을 빼고 바라봅니다 이내 햇살도 골목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잠깐이었습니다 2016. 1. 27.
멍에 멍에 정연자 늘 외롭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외로워진다 늘 혼자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혼자이다 내가 당신이 될 수 없듯이 당신은 내가 되지 못한다 외로눈 건 내 생명의 싹으로부터 생명의 불꽃이 꺼질 때까지 멍에로 남는다 2016. 1. 19.
어느 소나무의 말씀 어느 소나무의 말씀 정호승 밥그릇을 먹지 말고 밥을 먹거라 돈은 평생 낙엽처럼 보거라 늘 들고 다니는 결코 내려놓지 않는 잣대는 내려놓고 가슴속에 한가지 그리움을 품어라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도 굽어보신다 봄이 오면 눈 녹은 물에 눈을 씻고 쑥과 쑥부쟁이라도 구분하고 가끔 친구들과 막걸리나 마시고 소나무 아래 잠들어라 2016. 1. 14.
나,덤으로 나,덤으로 황인숙 나,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자꾸 기다리네 누구,나,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다니고 아,나,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2015. 12. 21.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 2015. 12. 4.
은행나무 은행나무 반기룡 신사 한 분이 서 계신다 노란 옷을 입고 아무 말없이 빗방울을 맞으며 온몸을 촉촉이 적신 채 흠뻑 명상에 취해 계신다 노랗게 물든 이파리를 바르르 떨며 된서리가 내리면 냉기를 받아 온몸에 주사선처럼 보내고 찬바람이 불면 미련하게 맞서지 않고 조용히 뿌리로 그 기운을 전송한다 은빛 살구나무라 불리기도 하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부글부글 끓고 님에 대한 애간장을 태워 썩은 내음이 대명천지에 진동한다는 설도 있고 보니 밀알 한 알이 썩어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자신을 망가뜨렸구나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처럼 단단한 지혜를 발견하였구나 (사진 은행나무 2015.11.17. 올림픽공원) 2015. 11. 24.
담쟁이 담쟁이 강영은 바위나 벽을 만나면 아무도 모르게 금이간 상처에 손 넣고 싶다 단단한 몸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의 틈바구니에 질긴 뿌리 내리고 싶다 지상의 무릎위에 기생하는 모오든 슬픔이여 벼랑끝까지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나를 넘고 싶다 담쟁이 2015.10.28. 남한산성 2015.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