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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367

토끼풀 반지 토끼풀 반지 / 정연복 청평사 대웅전 앞뜰 토끼풀 우거진 곳에서 고운 알 하나 골라 당신 손가락에 내 끼어준 작은 토끼풀 반지 필리핀 떠나던 날 내게 주신 편지에 당신은 썼지요 ˝제 손가락에는 평생 두고 토끼풀 반지가 있을 거예요.˝ 그래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풀반지 하나에도 깊은 감사드릴 줄 아는 당신의 고운 마음에 빛나는 토끼풀 반지 지금은 내 가난하여 토끼풀 반지를 드려야 했지만, 내 평생 당신만을 사랑하여 당신의 행복을 지켜 드리겠어요 2011. 5. 25.
모란 김 영 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잘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2011. 5. 20.
양지꽃 양지꽃 하준 넌 꽃말이 뭐니? 물으면 안될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이 꽃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난 그런거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대답할 것 같다. 바람도 너무 낮게 불면 안될 것 같다. '추워요. 너무 추워요' 웅크릴 것 같다. 봄이 오면 양지쪽에 제일 먼저 피어나는 노란 꽃...그래서 양지꽃이지, 어쩐지 찍고 싶지가 않고, 어쩌다가 찍어보면 사진이 잘 안되는 바로 그 꽃,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땅을 기며 가장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바로 그 꽃 찍기도 어렵고 사진이 잘 안되는 기피꽃이지만, 도저히 안 찍을 수 없도록 어여뿐 꽃들을 만나게 된 곳은 진달래 동산 부천 원미산이다 한 두송이를 잘 찍는 것은 무의미하지, 올망졸망 끈질기게 무더기로 피는 꽃이라 어느 한 송이만 예뻐 할 수는 없는.. 2011. 5. 5.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두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꽃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 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엊그제 내린 봄비에 불어난 계류가 시원하게 흐릅니다 물가에 노란 산괴불주머니 꽃이 첨벙 물에 뛰어 들고 싶은 어린이처첨 해사하게 웃고 있습니다, 위 시를 읽으며.. 2011. 5. 4.
인연의 잎사귀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고스란히 남겨두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입니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냐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서 벗어나 나 이제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네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아직도 소녀 같이 까르르 웃을을 날리는 수녀님들을 공원에서 만났습니다 양지쪽에 핀 하얀 으아리 꽃을 보며 무슨 꽃.. 2011. 5. 1.
각시붓꽃 각시붓꽃 신배섭 산사(山寺)의 새벽 소리 없는 종소리는 여명(黎明)으로 예불을 드리고 정처 없이 떠돌다, 설봉산 영월암 마애석불 아래 앉아 푸른 하늘을 향해 눈부신 대궁을 세운다 풍경소리를 닮은 곧은 잎사귀는 내리치는 죽비 사이로 천축(天竺)같은 꽃을 피워내고 비가 오면 비를 안고 바람 불면 바람을 품고 장좌 불와(長坐不臥)로 이슬을 먹으며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2011. 4. 26.
벚꽃축제 벚꽃 축제 오희정 여한 없이 핀 가지마다 눈이 즐겁고 반쯤 벙글어 손을 꼽게 하는 나무도 있구나 한두 송이 피우다 이내, 지우는 나무 아래 섰다 내 생은 어느 나무로 피고 있는가? 오래된 벚나무 고목의 줄기는 유난히 검은색입니다, 그야말로 흑과 백의 어울림이 흐드러졌습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해마다 사월이면 이 산 허리를 눈부시게 장식합니다 오, 내 인생의 나무는 어느 나무로 꽃 피우고 있는가? 이 꽃처럼 화사하게 꽃 피우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보람있는 작은 꽃이라도 피웠을까? 3일이면 꽃비로 스러지는 벚꽃이 일깨워 준다, 큰꽃이고 작은 꽃이고 다 부질없노라... 길거리의 벚나무와는 어딘지 다릅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산허리이고 나무의 키가 무척 크며 줄기 색갈이 유난히 검어서 더 신선하게 다가.. 2011. 4. 22.
백목련 백목련 김영교 우유빛 얼굴 볼 우물마다 고인 봄 하늘의 함성 하늘에 오르지 않고 이 지상에 남기로 한 꽃잎들 소리없이 흩어지고 있네 먼길 떠나 돌아오지 않는 사도들이 벗어놓은 신발들 그 신발들의 먼지를 보슬비가 씻어 내리고 있네. 아니~벌써~! 백목련이 지는게 안타까워서 서둘러 사진으로 담아 둡니다 노오란 개나리꽃을 배경으로 목련을 바라봅니다... 속절없이 가는 봄이 어쩐지 슬픕니다 노란 배경에 백목련이 너무나 하얘서...순결, 우아함, 이런말로 다 표현하기가 부족합니다 김영교님의 백목련... 이시를 봄마다 떠 올리게 된 게 한 십년 되었습니다10년쯤 전에, 시집 간 딸이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어느 작은병원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본... 비치 된 손 바닥만한 책자에 실려 있던 詩가 바로 이 시입니.. 2011. 4. 13.
산수유 산수유(山茱萸 ) 洪 海 里 금계랍 먹은 하늘 노랗게 무너져내리는 온 세상의 잠 비틀비틀 흔들리는 노오란 세상 허기진 춘삼월 한낮의 꿈. - 시집『투명한 슬픔』(1996) 해마다 산수유가 필 무렵이면 슬픕니다 몇 해전, 산수유 꽃사진을 찍다가 어머님의 부음을 듣고 달려갔던 기억때문입니다. 한번 가신 사람은 다시 올 수도 볼 수도 없는데 산수유만은 해마다 봄이면 꽃피웁니다 산수유는 해마다 피어서 "불효자식"을 나무랩니다 2011.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