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550 이끼계곡 사진가들이 즐겨찾는 영월군 상동면 이끼계곡에는 풍부한 수량과 새파란 이끼들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번 째 찾아와 본 이 계곡이지만 여전히 아름답네요 그러나 이 계곡을 사랑하는 뭇 사진가들의 발길에 의하여 이끼생태가 파괴되고 있지요 바위에 자라는 저 파란 이끼가 한 번 손상되면 5년이나 지나야 회복이 된답니다 저부터 다시 찾아오지 않아야 되는데...그러지 못하고 서너번도 더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2016. 6. 6. 옥천성당 제 고향 옥천의 성당은 어렸을 적에 보던 그대로입니다 그 흔한 타일 한장 붙이지 않고 은회색 페인트 칠만 한 소박한 성당이라서 더욱 정감이 가지요 제가 고향에 갈 적마다 꼭 들르는 곳으로 벌써 여러번째 사진을 찍고 여기에 올렸지만,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 성당에 다니셨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서 하늘에서 기뻐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ㅎ (2016.3.19.옥천) 어렸을 적에는 제법 높은 언덕 위의 성당이었는데..지금 보니 별로... 제가 20살 청년이었을 적에도 성당은 넓은 마루였었는데, 지금은 의자가 가득... 씨멘트로 바르고 거의 시멘트색깔과 유사한 회색 페인트 칠만...근데 그게 묘한 아름다움을 발합니다 성모상이 아니고... 몇 해전에 이 사진을 보신 어느분이 .. 2016. 4. 27. 돌아갈 수 없는 집 내가 어린시절 살았던 집은 10년 전쯤 팔렸고,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하다 괜히 이 날 그 자리에 가 보고 싶었다.집을 산 사람이 옛집을 헐어내고 아직 새집을 짓지 않은 듯, 빈 터에 파가 심겨져 있다 하늘로 가신 할머님과 부모님의 혼령이 맴돌것 같은 곳 나도 나이를 먹으니 귀소본능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가? 옛집이 있던 곳으로 가는 골목길은 변한 게 별로 없다 50년대에 저 길을 걷던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내 고향 마을은 "새터"라고 불렀었는데 한자로 옮겨서 새(新)터(基) 新基里가 되었다 그 말 그대로 한국전쟁 후 새로 조성된 마을이란 의미로 읍내의 변두리에 해당되었다 어린시절 뛰어놀던 골목길...땅도 넓고 비싸지 않은데 시골에 왜 고층아파트들을 짓는지 모른다 나의 모교 삼양초등학교.. 2016. 4. 13. 구례군 산동면 이 때쯤...산수유가 필무렵에만 여러번 째 찾아간 구례 산동면 올 해도 노랗게 꽃이 피고 축제를 열고 있는데, 일요일에는 차가 어찌나 밀리던지 마을 입구에서 들어서지도 못하고 차를 돌려야 했지요 다음날 오후 월요일에 찾아갔더니 마을은 텅텅 비었군요 그러니 주말에 명소를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황사에 미세먼지가 자욱한 봄날 오후라 산수유마져 지치고 나른한 색깔입니다 비 그친 아침 산수유의 그 샛노랑 색깔이 보고 싶지만, 그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2016. 4. 1. 板殿 봉은사에 갈 때마다 이 현판을 올려다 보는데, 이 판전 현판은 조선 후기 문인서화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1856년(철종 7)에 영기스님이 새긴 "화엄경수소연의초"등 경판을 봉은사에 안치하기 위해 법당을 지었는데,당시 추사는 유배지에서 돌아와 과천에 있는 과지초당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봉은사를 왕래하다가 1856.10.10.별세했는데 이 현판 글씨는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썼다고 전해진다 이 현판의 글씨는 어리숙하면서도 굳센 필세를 들어낸다,말미에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 71세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쓰다)이라고 낙관하였다."果"는 추사가 과천에 머물 때의 별호인 과옹(果翁),과로(果老)를 의미하며 꾸밈이 없는 졸박한 글씨에서 추사 말년의 청정무구한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여러번 찍어본 글씨지만.. 2016. 3. 17. 육단리 소나무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육단3리에 보호수로 사랑받고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입니다 수령 약 300년에 나무높이는 17m 둘레가 3.2m인데, 비스듬히 기운채 외롭게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가 참 멋집니다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굳굳하게 천년송으로 자라기를 기원해 봅니다 산 위에는 눈이 산 아래는 이슬비가 뿌리는 날씨라서 멋지게 찍지 못해 아쉽네요 2016. 3. 14. 독립공원 삼일절을 며칠 앞둔 날 서대문 독립공원을 돌아 보았다 독립공원 입구의 독립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돌문으로 서재필을 중심으로 한 독립협회가 우리나라의 영구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국민의 헌금으로 영은문을 헐고 1897년 그 자리에 세웠으며 197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삼일 독립선언 기념탑...3.1독립선언기념탑은 원래 탑골공원에 있었다.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주관하여 국민의 성금으로 그해 8월15일 제막되었다가 1979년 공원 정비사업때 뜻하지 않게 철거되었다. 이에 각계의 복원 건의가 잇달아 그 뜻을 살려 항일운동의 터전인 이곳 독립공원에 원상태로 다시 세웠다. 독립관(현충사)...이 건물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에게 영접연과 전송연을 베풀던'모화관(慕華館)'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18.. 2016. 2. 28. 이화 벽화마을 갑자기 날씨가 -10도로 내려가고 바람에 눈까지 날리는 날, 모처럼 카메라 메고 나간 나들이였으나 너무 추워서 대충 돌아보고 돌아왔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다시 가 보고 싶은 달동네 골목길... (이화벽화마을 2016.2.14.) 2016. 2. 15. 인천 자유공원 1889년무렵,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다가 1957년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7년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동상을 공원 동편에 건립했다. 맥아더 동상 인근의 광장은 인천 시가지, 인천항과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일몰 석양을 잘 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사실 서울에서 아주 멀다고 할 수 없는 인천임에도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 서 본지는 까마득한 옛날이다. 어린시절 서울 인천으로 수학여행 왔을 때이니 50년 도 더 오랜 세월이 흘렀다. 동상의 모습은 그 때 그대로인데, 이 앞에 서 있었던 한 소년은 노인이 되어 돌아왔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고 말 했다던가....? 인천 자유공원 하면 맥아더동상이 떠 오.. 2016. 2. 2.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