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551 인천 자유공원 1889년무렵,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다가 1957년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7년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동상을 공원 동편에 건립했다. 맥아더 동상 인근의 광장은 인천 시가지, 인천항과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일몰 석양을 잘 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사실 서울에서 아주 멀다고 할 수 없는 인천임에도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 서 본지는 까마득한 옛날이다. 어린시절 서울 인천으로 수학여행 왔을 때이니 50년 도 더 오랜 세월이 흘렀다. 동상의 모습은 그 때 그대로인데, 이 앞에 서 있었던 한 소년은 노인이 되어 돌아왔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고 말 했다던가....? 인천 자유공원 하면 맥아더동상이 떠 오.. 2016. 2. 2. 인천 차이나타운 한국속의 작은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1883년 인천 개항 이후 1900년대에 중국 상권이 활성화 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조성된 국내 유일의 차이나타운이다. 인천역 바로 앞쪽인 북성동 선린동 일대를 중심으로 화교가 증가하여 북성동 일대를 청관거리로 불리기 시작했고,화교들은 중국에서 식료,잡화,소금,곡물등을 들여와 팔고 우리나라의 사금 등을 구입해 갔으며,청관거리 일대에는 중국요리집과 무역상들이 자리잡아 인천 최대의 상권으로 발전하였다 한중문화관...인천 차이나타운을 소개하고 한국과 중국의 문화예수 교류를 목적으로2005.4.16. 개관하였다 한중문화전시관...한국과 중국의 역사 문화 경제 사회 생활상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물을 전시 중국은 한족 외에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었다, 56개 민족의.. 2016. 2. 1. 高山仰止 도봉산 입구의 도봉서원터 바로 앞 계곡 건너편에는 큰바위에 새겨진 음각글씨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高山仰止"에 눈길이 머문다.이 것은 1700년(숙종26) 7월에 곡은 김수증(1624-1701)이 쓴 글씨이다 "高山仰止"란 詩經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의미인데...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산앙지"의 지자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데 3백여년 전에는 아마도 모두 보이는 큰 바위였겠다,요즘도 이렇게 스승의 학덕을 우러러 흠모하는 제자나 후배가 있으려나?300여년이나 전해져 오는 암각글씨를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나네. 2016. 1. 8. 도봉산 천축사 도봉산 천축사-신선대-주봉 코스로 산행할 때면 늘 들르게 되는 절이다 여러차례 촬영한 적이 있는데 어쩐지 화려해 보여서,새해소원등을 접수하는 보살님에게 물어보니 단청을 새로 올렸다고 했다 내 취향으로는 금칠 보다 예전의 단청이 더 좋은데... 그거야 지나는 나그네 생각이고, 부처님은 금칠을 더 좋와 하실른지도 모르지 뭐. 대웅전 앞의 커피자판기에 "고장"이라고 딱지가 붙어 있다 커피 뽑으려다 돌아서는데 예의 그 보살님이 커피 마시려면 이리 오라고 한다 친절도 하시지,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주는데,바로 앞에 "보시금"박스가 놓여 있다, 그 것 참! 커피값 내라는 말은 없지만... 자판기 커피는 오백원인데 천원 넣었지,ㅎ실은 산중에서 주전자에 물 끓여서 타 주는 커피인데 천원도 너무 싸지 정수리에 .. 2016. 1. 5. 정이품송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은 수령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게.. 2016. 1. 1. 효자비와 효자문 나라에서 태인 허씨 허권(1847-1895)에게 내린 효자정려(효자에게 내린 표창)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효자비의 보호건물과 출입문. 효자각은 연꽃 봉오리,용, 봉황등을 조각하고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효자문에는 "孝子門"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고 주위에는 호랑이와 매란국죽이 그려져 있다. 이 건물은 전북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허권의 후손 살림집에 안에 있었던 것을 2008년 경복궁 민속박물관 앞 야외전시 공간으로 옮겨 보존하였다 2015. 12. 21. 창덕궁의 12월 창덕궁의 법전인 인정전... 1405년(태종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이 즉위한 후 1404년 한성(漢城)의 향교동(鄕校洞)에 이궁(離宮)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소덕전(昭德殿)·빈경당(賓慶堂)·여일전(麗日殿)·정월전(淨月殿)·옥화당(玉華堂)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며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화재가 .. 2015. 12. 21. 晩秋의 경복궁 늦가을 경복궁에서 2015.11.12.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앞 근정문앞 회랑에는 한복입은 처녀들이... 조선 법궁의 정전인 근정전으로 들어서는 문...근정문 근정전 경회루 수정전 봄에 화사하게 꽃 피었던 그 살구나무에도 단풍이 들고... 청기와지붕이 보이는 청와대로 가는 길 북악산 쪽 풍경 .. 2015. 12. 15. 12월의 창경궁 창경궁은 성종14년(1483) 세조비 정희왕후,예종비 안순왕후,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창건한 궁이다, 때문에 생활주거 공간인 내전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었으며 창덕궁의 부족한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법전과 편전 등이 배치되어 있어 독자적인 궁궐로서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창경궁은 선조25년 임진왜란으로 거의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에 대부분 재건되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지나면 옥천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명정문에 이른다 명정문을 지나면 품계석이 줄지어 있는 너른 조정과 법전인 명전전에 이른다, 명전전은 창건할 때부터 일반적인 궁궐의 정전이 남향인 것과 달리 자연지세에 맞추어 동향하고 있으며, 후에 이괄의난과 순조때 대화재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 2015. 12. 14.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62 다음